누가복음 2:1-14 "호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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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
Social
intro.
intro.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길거리가 시끌벅적 합니다. 나의 의지에 상관없이 들려오는 많은 공약들 그것을 얼마나 지킬지 이제는 회의감이 먼저 듭니다. 역대 최다 대선후보들 14명이나 등장 한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 속에 누구에게 한 표를 행사할지 고민하고 계십니까? 향후 5년을 이끌 지도자를 뽑는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이 땅 영향을 주기에 우리는 바른 분별과 기준을 가지고 이번 대선을 위해 기도하고 표를 던지길 바랍니다.
대학 때 저는 러시아 문학에 빠져 살았는데, 그 중에 알렉산더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러시아 볼다그다에 거주하는 러시아 친구가 1960년에 출간하여 자신이 소장한 책을 직접 보내주었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매우 스페셜한 책이라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저는 러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예브게니 오네긴의 모습이 이 땅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 같습니다. 오네긴은 이 책에서 시종일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무기력한 모습은 그에게 원인이 있기 보다는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러시아 당시 사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당시 러시아 청년들의 모습이 오네긴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길거리가 시끌벅적 합니다. 나의 의지에 상관없이 들려오는 많은 공약들 그것을 얼마나 지킬지 이제는 회의감이 먼저 듭니다. 역대 최다 대선후보들 14명이나 등장 한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낭만주의에 푹 빠져 살던 렌스키라는 남성과의 결투를 빼 놓고는 그는 사회적 관례에 마지못해 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네긴의 모습은 당시 러시아 청년들을 현실을 대변 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 속에 누구에게 한 표를 행사할지 고민하고 계십니까? 향후 5년을 이끌 지도자를 뽑는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이 땅 영향을 주기에 우리는 바른 분별과 기준을 가지고 이번 대선을 위해 기도하고 표를 던지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어떤가요? 하루 하루의 삶이 활기가 넘칩니까? 내일이라는 것에 소망을 품고 있나요? 노력해도 결과가 뻔하다는 허무함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충분히 사용하며 삶에서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청년들의 일자리 점점 줄어들고 사회는 더욱 강팍해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두 왕이 대조 됩니다.
대학 때 저는 러시아 문학에 빠져 살았는데, 그 중에 알렉산더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러시아 볼로그다에 거주하는 러시아 친구가 1960년에 출간하여 자신이 소장한 책을 직접 보내주었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매우 스페셜한 책이라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저는 러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가이사 아구스도
1. 가이사
가이사
이 책에 등장하는 예브게니 오네긴의 모습이 이 땅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 같습니다. 오네긴은 이 책에서 시종일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무기력한 모습은 그에게 원인이 있기 보다는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러시아 당시 사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당시 러시아 청년들의 모습이 오네긴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어떤가요? 하루 하루의 삶이 활기가 넘칩니까? 내일이라는 것에 소망을 품고 있나요? 노력해도 결과가 뻔하다는 허무함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충분히 사용하며 삶에서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청년들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사회는 더욱 강팍해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두 왕이 대조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옥타비아누스로 더 잘 알려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등장 합니다. 그는 시저의 양자로 시저 사후 삼두 정치 패권을 장악하고 드디어 로마의 평화 시대를 구축한 인물 이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으로 부터 “아구스도”존귀한 자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그가 오늘 행했던 일이 역사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절을 보니 무엇을 했다고 합니까? 인구 조사 입니다. 자! 인구 조사는 왜? 할까요? 첫째는 세금을 거두기 위함이고 둘째는 징병을 하기 위함 입니다. 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훌륭한 척도가 되는 것이 인구 조사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에 위해 로마는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로운 황금 시기가 도래 했지만 사실은 황제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해야 했습니다. 세금을 내야 했고 로마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잃어가며 군방의 의무에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 황제는 특별히 아구스도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많은 그리스 비문에 그를 “구주"와 “신"으로 묘사하고 추앙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일인 9월 23일은 축일로 지켜지며 그의 출생은 세상을 위한 복음 즉, 기쁜 소식으로 지켜졌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진짜 왕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2. 진짜 왕 예수
1. 가이사
그런데 여러분들이 느끼셨겠지만 ,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받았던 칭호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그 칭호가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의 평화”가 시작 되어 약 200년간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평화의 황제는 옥타비아누스 가이사 아구스도 아닌 예수님이 이 세계사 가운데 등장함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바라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느끼셨겠지만 , 로마황제 아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옥타비아누스로 더 잘 알려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등장 합니다. 그는 율리우스 시저의 양자로 시저 사후 삼두 정치 패권을 장악하고 드디어 로마의 평화 시대를 구축한 인물 이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구스도” 존귀한 자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그가 오늘 행했던 일이 역사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절을 보니 무엇을 했다고 합니까?
인구 조사 입니다. 자! 인구 조사는 왜? 할까요? 첫째는 세금을 거두기 위함이고 둘째는 징병을 하기 위함 입니다. 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훌륭한 척도가 되는 것이 인구 조사입니다.
우리는 구주가 아닌 인물에 구주라 부르고 존귀한 자가 아닌 자에게 존귀함을 붙이며 복음이 아닌 것에 복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실상들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옥타비아누스 처럼 자신의 체제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이 세상의 왕의 모습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에 위해 로마는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로운 황금 시기가 도래 했지만 사실은 황제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해야 했습니다. 세금을 내야 했고 로마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잃어가며 군방의 의무에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 황제는 특별히 아구스도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많은 그리스 비문에 그를 “구주"와 “신"으로 묘사하고 추앙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일인 9월 23일은 축일로 지켜지며 그의 출생은 세상을 위한 복음 즉, 기쁜 소식으로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시간 그런 지도자들에게 표를 행사 했습니다. 모두에 구원, 기쁜 소식을 가져다 준다는 그들의 말에 볼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어두워져 저 또한 잘 못 표를 행사 했습니다.
2. 진짜 왕 예수
그런데 여러분들도 느끼셨겠지만 ,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받았던 칭호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벽보 가득히 변화, 바꾸겠습니다. 때로는 주어와 목적어가 빠진 체 지키겠습니다. 희망 등등 많은 수식어가 사람들에게 붙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진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고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지도자를 바라봐야 겠습니다.
옥타비아누스때도 그랬고 현대 사회도 여전히 사람이 희망의 근원지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에 앞서 진짜 왕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며 그 진짜 왕을 만나 세상을 볼 줄 아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3. 대속물 예수 그리스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붙이는 그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되어야 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의 평화”가 시작 되어 약 200년간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평화의 황제는 옥타비아누스 가이사 아구스가 아닌 예수님이 이 세계사 가운데 등장함을 우리는 오늘 본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주가 아닌 인물에 구주라 부르고 존귀한 자가 아닌 자에게 존귀함을 붙이며 복음이 아닌 것에 복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실상들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옥타비아누스 처럼 자신의 체제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이 세상 왕의 모습입니다.
옥타비아누스 삼두 정치의 패권을 장악할 때 그는 피비린 내 나는 내전을 힘으로 제압했 그리고 그는 존귀함이라는 아구스도라는 칭호도 받고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에 위해 세워진 권위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시간 그런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행사 했습니다. 모두에 구원, 기쁜 소식을 가져다 준다는 그들의 말에 볼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어두워져 저 또한 잘 못 표를 행사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진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고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지도자를 바라봐야 겠습니다.
3. 희생과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진짜 권위는 타인의 희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주 예수님의 탄생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약 145km의 긴 거리를 이동하던 중 요셉과 마리아는 해산을 하게 됩니다.
짐승의 구유에 놓일 수 밖에 없던 상태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구스도를 통한 평화의 도래에 환호 했을 당시에 예수님은 누가복음의 주된 주제처럼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왕이 되시고자 구원자가 되시고자 오셨습니다.
옥타비아누스 삼두 정치의 패권을 장악할 때 그는 피비린 내 나는 내전을 힘으로 제압했 그리고 그는 존귀함이라는 아구스도라는 칭호도 받고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에 위해 세워진 권위 입니다.
세상의 왕은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지만, 진짜 왕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시므로 구원 받을 자들을 부르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진짜 권위는 타인의 희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주 예수님의 탄생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약 145km의 긴 거리를 이동하던 중 요셉과 마리아는 해산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 전통상 거주지가 아닌 고향에서 인구조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구유에 놓일 수 밖에 없던 상태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구스도를 통한 평화의 도래에 환호 했을 당시에 예수님은 누가복음의 주된 주제처럼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왕이 되시고자 구원자가 되시고자 오셨습니다.
4. 여전히 어두운 안목
세상의 왕은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지만, 진짜 왕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시므로 구원 받을 자들을 부르시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구분이 성육신 즉 육신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희생의 시작 입니다.
세계사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희생케하는 이 세상의 사람, 사상, 철학에서 평화를 추구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은 진짜 왕을 바라볼 줄 모릅니다. 서두에 대선에 대해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 분이 본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갈 이 땅의 대리자를 바르게 선정하지 못한다면, 청년들은 또다시 긴 인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4 얼마전 있었던 미국 대선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길 바랍니다.
다수가 어떤 인물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져다 준다는 공약을 믿기 전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 하는가?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5. 얼마전 있었던 미국 대선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길 바랍니다.
사실 힐러리와 트럼프 누가되어도 비슷했으리라 생각 됩니다. 결국은 트럼프가 당선 되었는데, 뉴스를 살펴보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의 정책이 매력적이었으며 그는 모든 연설에서 하나님을 칭송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행동은 전혀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조에 대한 배타성을 가진 것은 켤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언 커쇼가 쓴 히틀러 전기문을 보면 기가 막히게 트럼프의 모습과 연설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했던 히틀러의 모습은 너무도 닮았습니다. 두 사람다 로마 가톨릭의 가장 강력한 권력층이 예수회가 키운 인물이라는 점도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은 가이사 아구스도의 모습, 가짜 왕의 모습입니다.
6. 우리는 참된 왕이신 예수님이 왜? 진짜 복음인가 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처음 듣게 된 자들은 세속의 통치자가 아니라 매우 비천한 직군에 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목자들은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표현 됩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나타내면 “밤에 보초를 섰다"입니다. 피곤에 지쳐 눈 꺼플이 쳐졌을 그들… 마치 우리가 세상살이 지쳐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목자들의 모습은
7. 그러나 그들에 진짜 복음이 선포 됩니다.
주의 사자가 소식을 전합니다. “무서워 하지 말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5절 말씀을 주목하여 함께 읽어 보길 원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목자들은 주의 사자의 말을 듣고 그 복된 소식을 믿고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 진짜 왕의 탄생을 목격합니다.
8. 대선을 앞두고
여러분들은 복된 소식을 가져올 인물을 뽑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겠습니까?
사실 힐러리와 트럼프 누가되어도 비슷했으리라 생각 됩니다. 결국은 트럼프가 당선 되었는데, 뉴스를 살펴보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의 정책이 매력적이었으며 그는 모든 연설에서 하나님을 칭송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행동은 전혀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종에 대한 배타성을 가진 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언 커쇼가 쓴 히틀러 전기문을 보면 기가 막히게 트럼프의 모습과 연설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했던 히틀러의 모습은 너무도 닮았습니다. 두 사람다 로마 가톨릭의 가장 강력한 권력층인 예수회가 키운 인물이라는 점도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은 가이사 아구스도의 모습, 가짜 왕의 모습입니다.
5 여전히 어두운 안목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은 진짜 왕을 바라볼 줄 모릅니다. 서두에 대선에 대해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 분이 본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갈 이 땅의 대리자를 바르게 선정하는 전제는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수가 어떤 인물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져다 준다는 공약을 믿기 전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 하는가?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6. 우리는 참된 왕이신 예수님이 왜? 진짜 복음인가 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처음 듣게 된 자들은 세속의 통치자가 아니라 매우 비천한 직군에 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목자들은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표현 됩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나타내면 “밤에 보초를 섰다"입니다. 피곤에 지쳐 눈 꺼플이 쳐졌을 그들… 마치 우리가 세상살이 지쳐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목자들의 모습은 그러 했습니다.
세상의 왕은 자신을 위해 호적을 합니다.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할지 무익하다면 버려지지 않습니까? 정치 세계뿐만 입니까? 직장에서도 여러분이 필요 없다면 가차 없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요즘엔 남녀간의 사랑도 세속적 기준이 된지 오래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참된 왕에 대한 기쁜 소식은 그 그 기쁜 소식을 유지하지 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하지도 호적에 그들이 올려지기 위해 먼길을 수고로이 올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자가 친히 낙망하는 영혼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7. 그러나 그들에 진짜 복음이 선포 됩니다.
주의 사자가 소식을 전합니다. “무서워 하지 말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러분 여전히 그 큰 기쁨의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세상에서 복음 찾습니까? 사람, 사상, 어떠한 체계와 집단. 아닙니다. 그것은 유한 합니다.
최소한 여러분들이 성도라는 칭함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15절 말씀을 주목하여 함께 읽어 보길 원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목자들은 주의 사자의 말을 듣고 그 복된 소식을 믿고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 진짜 왕의 탄생을 목격합니다.
목자들은 가난한 자들입니다. 혹시 우리의 영혼이 부유하다는 착각에 있어 그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을 귀기울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희망을 찾습니까? 여전히 세상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입니다.
희망없다는 세상에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있음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정부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8. 대선을 앞두고